성수대교(이미끊어져 있었다   1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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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
1~2년전 이미 끊어져 있었다
철골 용접부위부식 빔 균열 반복하중 못견뎌 사고당일 "피로 붕괴"
본사 취재팀-건설방식기술연 조사
• 김병석
발행일 : 1994.10.27 / 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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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는 사고가 나기 전에 이미 끊어져 있었다.

이같은 사실은 부식방지분야의 국내 권위자인 한국건설방식기술연구소 이의호소장(53 방식공학박사)이 26일 사고구간 설계도를 바탕으로 성수대교 사고현장을 정밀검사한 결과 내린 결론으로, 다리를 떠받치는 철골(수직재) 용접부위가 오랜 부식으로 사고이전에 이미 상당기간 끊어져 교량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5-10면>

이박사는 따라서 다른 부분보다 부식이 빠른 용접부위에 대한 점검만 제대로 이루어졌더라도 이번 참사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박사의 진단에 따르면 다리에서 끊어져나간 강북쪽 수직재의 용접부위 단면을 정밀관찰한 결과, 상현재와 연결되는 수직재의 h빔 단면이 시뻘겋게 녹슬어있었으며, 특히 수직재 빔의 두께도 부식이 상당히 진척돼 원래보다 다소 가늘어져 있었던 점으로 미뤄 이미 1~2년전부터 수직재가 끊어져있었다는 것.

또 수직재가 부식된 순서에 대해서는 용접결합부에 육안으로 관찰되지 않는 점식이 발생, 차츰 빔 균열로 이어진 뒤 반복하중을 받아오다 사고당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피로파괴(fatigue fracture) 현상을 일으켜 붕괴됐다는 것이다.

이에따라 다리붕괴순서는 트러스를 떠받치는 강북쪽 3개 수직재중 영동대교쪽인 동쪽 수직재가 가장 먼저 끊어졌고, 이어 중앙수직재, 서쪽수직재 순으로 잇달아 붕괴된 것으로 조사됐다.

사고당시를 상세히 추정하면 이미 끊어져있던
 ①번 동쪽 수직재가 하중에 못이겨 순간적으로 먼저 끊어졌고, 곧바로
②번 하현재 연결부위의 아랫부분이 파열됐다. 이어 상판이 동쪽으로 기울면서
④번 연결부위의 왼쪽이 찢어졌고, 동시에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강북 트러스중 서쪽 수직재가 가장 뒤에 끊어졌는데,
이 때문에 ⑥번 연결부위는 상대적으로 온전한 상태였다.전문가들은 수직재가 핀으로 연결된 중앙상판(17m 48m)을 한쪽 3개씩 6개로 버텨주나, 한개가 떨어져나가면 3개가 동시에 파괴돼 사실상 다리하중의 50%를 견뎌내는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이박사는 "용접시공의 완벽여부가 철골구조물의 수명을 10~20년을 늘리기도하고, 줄이기도한다"면서 "선진국의 경우 용접 설계와 시공이 철저해 철골부위의 용접땐 x레이촬영을 통해 철저히 검사를 하고, 시공후에도 이 부위 점검과 함께 부식방지용 페인팅을 하는 등 사후관리에 철저를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따라 한강 전교량의 철골 용접부위 결함과 부식여부에 대한 집중검사가 우선 실시되고, 적절한 사후조치가 뒤따라야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김병석기자>
 

성수대교자료(참사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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