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대교자료(참사순간)   13-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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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지직 꽝꽝 한강이 무너졌다/성수대교 참사/사고순간
• 입력 : 1994.10.22 00:00

 *끊긴 다리아래로 차량 연쇄다이빙/뒤집힌 버스엔 가방-도시락 흩어져/군-경찰 2천여명 비-급류로 구조 지장/시민들 강변서 애태워 늑장 출동 분통 전 국민이 일순 말을 잃었다.

이른 아침 부지런히 직장으로, 학교로 향하던 아무 죄도 없는 시민들이 어처구니 없이 목숨을 빼앗겼다. 거대한 다리가 거짓말처럼 무너져버린 사고현장은 비바람속에 휴지처럼 구겨진 추락차량, 피투성이가 된 희생자들로 뒤범벅된 채 대한민국 오늘의 현주소를 증언하고 있었다.

사고 순간 성수대교는 이날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출근길 차량들로 붐볐다.
박창호(53.회사원)씨는 "성수대교가 내려다 보이는 아파트 14층을 나서려는데 갑자기 다리에서 대포소리 같은 꽝 소리가 나더니 3분쯤 뒤 두번째 꽝소리와 함께 다리가 내려앉기 시작했다"면서 "3번째 폭음소리와 함께
 다리가 완전 끊기고 차량들이 순식간에 한강에 떨어졌다"고 말했다.

 당시 주변에서 낚시를 하고 있던 김장수(45.페인트공.서울 동대문구 전농3동)씨는 "우지직하는 소리에 고개를 들어보니 다리 가운데 부분이 강물로 떨어지면서 그 위에 있던 차량들이 추락했다"며 "차에서 빠져 나온 사람들은 물밖으로 나와있는 상판위로 나와 손을 흔들며 구조를요청했다"고 말했다.

 추락됐다 구조된 김민자(38.여.서울 안암국교 교사)씨는 "차를 타고가는데 꽝 소리와 함께 땅이 꺼지는 느낌이 들면서 아래로 떨어졌다"며 "순간적으로 눈을 감았다 떠보니 차는 물속에 빠지고 차안으로 물이 들어와 깨진 차창을 통해 탈출했다"고 말했다.

 현장 사고현장은 마치 비행기 폭격에 맞은듯 처참했다. 뚝 잘려져나간 교각 사이로 떨어져내린 상판은 물위에 비스듬히 떠 그위에 한성운수 소속 16번 버스가 남쪽방향을 바라보고 뒤집혔다. 서울3호9749 프라이드승용차와 서울7구9286 봉고차는 비교적 원형 상태로 남쪽방향으로 가지런히 서있었다. 시내버스는 사고당시 남쪽에서 북쪽으로  달리다 끊긴 다리 끝부분에 뒷바퀴가 걸리면서 한바퀴 돌아 떨어지는 바람에 더욱 희생자가 많이 났다.

 바닥과 천장이 닿을 정도로 찌그러진 시내버스 안은 학생들의 책가방, 안경, 볼펜, 도시락 등이 어지럽게 널리고 주변 곳곳에 피가 흥건하게 고였다.

구조 작업
 사고가 나자 경찰과 군은 경찰기동대 11개중대 1천3백20명, 소방구조대 1백80명, 특전사 수중탐사요원 1백30명등 1천7백여명의 구조반을 현장 에 투입했으며, 군-경헬기 16대, 경찰순찰정 6정, 모터보트 4정,앰뷸런스 31대 등을 급파했다.

구조대는 세찬비와 불어난 강물, 급류 등으로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오전 9시 30분쯤에는 무너져내린 교각부근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면서 구조반이 황급히 대피하기도 했다.

 구조대는 일단 부상자들을 구출해낸 뒤 버스를 바로 세우고 절단기등으로 버스를 자르며 사망자를 끌어냈다. 구조대는 이들을 대한적십자사가 보낸 모포로 감아 헬기로 구명선에 실어날랐다. 구조대는 물속에 잠겨있던 서울4푸7962호 엑셀승용차와 서울3흐4675호 르망승용차를 건져내고 이 안에 있던 남녀 사체 1구를 인양했다.

경찰은 다리의 또 다른 상판이 추가로 무너질 가능성에 대비, 무너진 지점에서 1백여m 떨어진 곳에 밧줄을 치고 취재진과 시민을 통제했다. 사고 현장 주변인 올림픽대로와 남과 북 강변도로엔 2천여명의 시민들이 몰려나와
 안타깝게 구조상황을 지켜봤다.

시민들은 잘린 성수대교 모습이 TV를 통해 계속 방영되는데도 30여분간 구조작업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자 "
 늑장구조가 더 많은 희생을 불렀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박종세-한현우-이하원기자

*성수대교 참사/현장 주변/"안하던 인사하더니" 운전사부인 오열/공군장병 50여명 헌혈 주부들 자원봉사/어제 보수공사 중단

공사표지판도 없어 성수대교 붕괴사고 현장은 참혹하다 못해 허망했다. 비바람이 부는 가운데 평소 차량들로 빽빽했던 다리는 폭격을 맞은 듯 허리가 잘려나갔고 잘린 부분은 한강물속에 처박힌 채 도로부분만 물위에 떠있었다.

그 위에는 구조요원 2백여명이 부상자와 버스속에서처참하게 일그러진 사망자들을 끄집어내 헬기로 실어날랐다. 성수대교에서 추락한 한성운수 16번 버스 운전사 유성열씨(46.성북구 하월곡동) 등 6명의 시신이 안치된 성동구 구의동 방지거병원 영안실에는 수십명의 유가족들이 몰려와 밤늦도록 오열했다. 유씨의 부인 이개순씨
 (45)는 "아침 6시 출근길에 나선 남편이 춥다고 해서 내의에 점퍼를 입혀 배웅했다"며 "평소와 달리 다녀오겠다 는 인사까지 다정하게하고 간 남편이 "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카풀로 출근하다 구 사일생으로 살아난 안암국교 김민자-박정애교사가 입원한 혜민병원 응급실에는 같은 차에 탔다가 사망한 최정환교사(54)의 부인 이재옥씨(54 )와, 윤현자교사(60)의 남편이 찾아와 각각 남편과 부인의 생사를 물어 주위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이씨는 오전 8시15분쯤 회사에 출근한 아들이 집으로 전화를 해 사고사실을 알았다며 남편의 행방을 찾느
 라 급히 다른 병원을 수소문했다. 희생자중에는 검소함과 성실이 오히려 죽음을 부른 원인이 된 공무원이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 다.
산림청 임업연구원 산지개발과장 이흥균박사(56.강남구 역삼동 성보아파트)는 자신의 승용차를 놔두고 언제나 처럼 버스를 이용, 홍릉에있는 연구원에 출근하던 중 어처구니 없는 변을 당했다. 이박사는 이날도 평소처럼 부인 백정숙씨(52)가 몰아주는 자신의 엑셀 승용차를 타고 성수대교 남단 16번 버스정류장으로와 늘 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해왔다. 그러나 평소 입버릇처럼 말해온 내핍생활 이 오히려 화를 부른 셈이 됐다.

 현장에는 대한적십자사 부녀봉사단 60여명과 압구정2동 부녀회원 20여명이 나와 사고처리를 하고 있는 군-경 관계자들에게 라면과 커피를 끓여주는 등 봉사활동을 했다. 압구정2동 부녀회장 장충양씨(56)는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 사고라 회원들에게 급히 연락,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성남시에 있는 공군 3726부대(부대장 고영섭준장) 장병 50여명은 낮 12시쯤 버스편으로 혜민병원에 도착, 부상자를 위한 수혈을 자청하고 나섰다. 정훈참모 김명훈중령(40)은 "사고소식을 듣고 부상자들에게 수혈이 필요할 것 같아 달려왔다"며 "2백여명이 지원했는데 우선 50여명만 왔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청와대는 PC통신 천리안 청와대 한마당 란에 성수대교 붕괴사건 토론장을 개설하면서 " 성산대교 붕괴 사건을 맞이하여 "라고 잘못 표현했다가 PC통신인들의 거센 비판을 받고 부랴부랴 이를 정정하는 해프닝을 빚었다. 이에 대해 천리안은 물론 하이텔 에까지 "어떤 다리가 무너졌는지도 파악못하고 있다"는 거센 비난이 쏟아지자 청와대측은 "중요한 단어를 실수했다"며 2시간만에 성산대교 를 성수대교 로 고쳤다.

사고후 구조와 수습에 힘쓰다보니 사망자와 부상자 명단이 처음에는 상당히 혼선을 빚었다. 각 병원을 통해 확인한 사망자가 이날 낮 12시쯤까지는 48명까지 늘었으나 병원을 옮긴 사망자와 부상자가 밝혀지면서 32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사고지역 주변 강물에 차량과 함께 타이어와 가방들이 떠있고 물위로 기름이 계속 퍼지고 있는데다 평소 오전 7시30분~8시30분대에 정체가 심한 점 으로 미뤄 추가 사망자가 발견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있다. 김동석-박기연-한현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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